북한 유학생정책의 변화와 전망 (김형수) 서울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프로젝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9-10 08:13 조회 202회 댓글 0건본문
Ⅰ. 서론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은 자국 내 국가안보와 경제건설, 문화발전을 위하여 이를 이끌어 나갈 인재를 필요로 하며 그 육성에 관심을 가진다. 북한도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사회주의, 공산주의 공업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를 내세우고 정치적 자주, 경제적 자립, 군사적 자위를 위한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 구호를 제시하고 경제발전과 기술혁신을 추진하여 왔다. 북한당국은 이 과제들을 실현하기 위하여 과학기술인력양성을 중요한 정책으로 내세우고 이를 위하여 일찍부터 소련이나 동구 등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기술을 습득하려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북한의 이런 정책은 아주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1946년 8월 30일 조선로동당 제1차대회에서 조선로동당규약을 제정하면서 여기에 과학자, 기술자들을 중시하고 선동하는 내용을 첨부하였다. 이 당규약 제3조에는 “조선로동당은 로동자, 농민, 근로인텔리가운데서 군로대중의 리익과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의 위대한 사업의 승리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선봉적인 투사들로써 조직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북한은 1946년 10월에 조선로동당을 창립하면서 당 마크에 노동자, 농민과 함께 인텔리와 기술자를 의미하는 붓을 새겨 넣음으로서 당의 정책과 노선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구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 국가들이나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북한 고유의 상징적인 마크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인텔리문제를 이중성과 계급성, 혁명성에 문제로 규정하고 인텔리의 노동계급화를 다그칠 데 대한 방침을 시종일관하게 견지하였다. 인텔리의 이중성은 그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서 공산주의 건설의 기본계급인 노동자와 농민과는 다른 무산자계급이 아니기 때문에 끊임없이 교양하여야 하며 조직력과 단결력이 부족하기에 노동계급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 글은 북한의 과학기술인력양성의 일환으로 전개된 북한 유학생정책의 변화를 검토하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하여 기술하려는 것이다. 북한의 유학생정책에 관한 자료를 많지 않지만 필자의 경험을 포함하여 활용할 수 있는 국내외 자료들에 기초한다면, 북한의 유학생정책은 크게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단계는 초기 대학교 설립을 위한 교육자양성과 외교관양성의 시기, 2단계는 1970년대와 1980년대 경제건설과 국가과학기술발전을 위한 인재양성의 시기, 3단계는 선진과학기술 인력양성을 중심으로 하는 시기이다.
북한당국은 1988년 12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결정 제14호로 국가과학기술발전을 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기술법’을 채택하였다. 그 이후 3차례에 걸쳐 수정하면서 과학기술법은 북한의 핵심과학기술분야와 해외유학생파견의 의지를 담았다. 이 법률 1장 4조에서는 정보기술과 나노기술, 생물공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1장 6조는 다른 나라의 선진과학기술 도입의 중요성을, 5장 42조에서는 양성생을 다른 나라에 파견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북한당국이 실시해온 유학생정책을 시기별로 분석하고 정책변화에 따른 유학생실태를 유학의 목적과 파견국가, 주거생활, 조직생활 등의 측면에서 검토할 것이다.
Ⅱ. 냉전하의 북한유학생정책
유학생의 파견인원의 변화
북한의 유학생정책은 국가발전단계에 따라, 국제정치정세에 따라, 끊임없는 변화를 가져왔으며 여전히 유학생파견을 통한 선진과학기술 도입을 실현하려고 하고 있다. 북한의 과학자, 기술자 및 전문가양성은 크게 3단계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1단계는 1946년부터 1960년대 이전까지의 ‘교육기관 신설 및 확장, 외교관양성’ 시기로, 해방 후 대학신설이 절실했던 북한당국은 고등교육인재들과 외교관 육성을 위하여 유학생들을 대대적으로 파견하였다. 2단계는 1970년대 에서 1980년대 말까지의 ‘경제건설과 국가과학기술발전을 위한 인재양성’ 시기로, 경제발전과 국방과학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인재를 양성하였다. 3단계는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선진과학기술 전문인력 양성’ 시기로, 선진과학기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하여 유학생들을 파견하였다.
[표 2] 북한 유학생의 소련 고등교육기관 입학과 졸업현황(1946~1985)
연도 | 입학생 | 졸업생 | 연도 | 입학생 | 졸업생 | 연도 | 입학생 | 졸업생 |
1946 | 230 |
| 1961 |
| 32 | 1976 | 50 | 8 |
1947 | 140 |
| 1962 |
| 2 | 1977 | 13 | 15 |
1948 | 60 |
| 1963 |
| 4 | 1978 | 6 | 9 |
1949 | 90 | 11 | 1964 |
| 4 | 1979 | 21 | 9 |
1950 | 165 | 8 | 1965 | 2 | 4 | 1980 | 49 | 10 |
1951 | 129 | 41 | 1966 |
|
| 1981 | 135 | 66 |
1952 | 262 | 52 | 1967 | 34 | 4 | 1982 | 133 | 80 |
1953 | 218 | 73 | 1968 | 18 | 8 | 1983 | 147 | 71 |
1954 | 79 | 107 | 1969 | 16 | 11 | 1984 | 286 |
첨부파일
- 북한대학 김형수서울대 동아시아연구소.hwp (192.0K) 0회 다운로드 | DATE : 2024-09-10 08:13:5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